집구석에서 굴러다니는 교재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오전 시간이 참 애매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설거지 좀 하면 금방 점심때가 오는데, 그사이에 뭘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 때가 있다. 다들 비슷할 거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ITQ 자격증 책을 샀다. 예전에는 엑셀도 좀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켜니 영 어색했다. 한 권에 2만 원이 채 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책꽂이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처음엔 하루에 한 챕터씩 끝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는데, 둘째 녀석이 갑자기 열이 나거나 집안 대소사가 생기면 그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국비 지원을 찾아 기웃거려본 시간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해볼까 싶어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국가자격증 지원 제도 같은 것도 살펴봤다. 다문화가족 자녀 교육활동비 지원 공고를 보다가 우연히 자격증 취득 비용 지원 이야기를 본 건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막상 내가 직접 신청해서 교육받으러 다니려니 엄두가 안 났다. 낮 시간에 3~4시간씩 시간을 내서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게 사실 애 키우는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충남 어딘가에서 3D 프린팅 교육을 한다는 기사도 봤는데, 그걸 배우면 진짜 어디 취업이 되긴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일단 집 근처 센터에 전화라도 해볼까 싶다가도 수화기를 내려놓게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법률사무소 같은 곳은 어떨까 싶어
가끔은 너무 막막해서 법률사무소 취업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보기도 한다. 아는 언니가 어디서 교육받고 사무 보조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팔랑거리기도 하고. 장례지도사 자격증도 한때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이건 정말 마음가짐이 단단해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접었다.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 5개 따고 현장에서 일하신 어떤 분 기사를 보면서 ‘역시 기술이 최고지’ 싶다가도, 내가 당장 보일러 수리를 하러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오히려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엑셀 칸을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네
결국 다시 ITQ 연습 문제로 돌아왔다. 함수 하나 제대로 기억 안 나서 유튜브 검색하고, 또 따라 하다가 애한테 전화 오면 다 끄고 튀어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짜 합격증을 하나라도 거머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전에는 뭐든 시작하면 끝을 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내 시간을 쪼개서 뭔가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물론 그 결과물이 실제로 취업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공부하다 보면 자꾸 잡생각만 늘어서 문제다.
아직은 갈피를 못 잡는 중
오늘도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다. 책은 펼쳐져 있는데 진도는 3페이지에서 멈춰 있다. 누군가는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사실 공부하는 내내 ‘이걸 해서 나중에 얼마를 더 벌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계산기만 두드리는 것 같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는 거라는 말이 딱 맞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집중해 봐야지 다짐하지만, 글쎄, 내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나. 일단 펴놓은 책을 덮지도 못한 채로 식탁 위에 방치해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