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늘 거창하게 계획표부터 짰다
결국 공무원 시험 한번 쳐볼까 싶어 노량진 근처 강의실을 기웃거렸던 게 작년 봄이었다. 20대 후반, 인문계열 졸업장을 손에 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해서였을까. 그냥 남들이 다 하는 거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컸던 것 같다. 서점에서 산 기본서가 무려 5권, 두께가 손가락 한 마디는 족히 넘는 것들이 책상에 쌓이니 일단 공부를 시작했다는 뿌듯함부터 들더라. 근데 막상 첫 페이지를 넘기니 문장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싶고. 행정학이니 경제학이니 하는 것들이 내 삶과 이렇게 동떨어져 있었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스터디 카페에서의 지루한 시간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스터디 카페에 매달 15만 원 정도를 결제했다. 시설은 깨끗했다. 조명도 밝고 커피도 무제한이라 좋았는데, 3시간쯤 지나면 등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다들 숨도 안 쉬고 펜을 굴리는데, 나만 멍하니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 게 얼마나 괴롭던지. 가끔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펼쳐놓은 문제집을 슬쩍 봤다. 다들 형광펜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놨는데, 내 책은 거의 백지장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탈북민 지인들과 NCS 준비를 해서 합격했다는 기사를 보고 자극을 받으려 노력했지만, 현실은 그냥 졸음과 싸우는 게 전부였다. 시험 시간은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지.
비용 문제와 현실적인 고민들
강의료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유명 강사 강의를 패키지로 끊었는데, 중간에 흥미를 잃으면 그 돈이 고스란히 날아간다는 게 더 스트레스였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뭐 하냐’는 질문이 제일 무서웠다. ‘공부한다’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눈빛이 ‘그래서 언제 붙는데?’라고 묻는 것 같아서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사실 경제학과를 나와서 경제 관료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막연하게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덤빈 거라 목적의식이 약했다. 이게 나중에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들었다.
공부하다 말고 창밖을 보며 생각한 것들
어느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창밖을 보다가 그냥 책을 덮어버렸다. ‘이걸 한다고 내 삶이 정말 달라질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뉴스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일들이 벌어지고, 기업들은 라이프케어 플랫폼이니 뭐니 하며 변화를 꾀하는데, 나는 왜 이 좁은 책상 앞에 앉아 정답도 없는 문항에 밑줄을 긋고 있을까 싶었다. 공부를 안 하면 불안하고, 공부를 해도 딱히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그 이상한 굴레 말이다. 공우재처럼 스트레스로 불안 장애까지 겪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마음이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무언가 남기는 했나
시험 날짜는 다가오는데 실력은 제자리였다. 모의고사를 치면 과락을 면하기 급급했고, 틀린 문제를 다시 봐도 왜 틀렸는지 이해가 안 되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남은 건 닳아버린 형광펜 몇 개와 조금은 너덜너덜해진 기본서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억지로 참고 견뎠던 시간들만 파편처럼 남아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준비해서 합격한다는데, 왜 나만 이렇게 끝이 흐릿한지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감정이 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창밖 풍경 보면서 그런 생각 하는 것도 당연하네요. 저도 가끔 비슷한 생각해요.
모의고사 틀리는 거 너무 공감돼요. 제가 생각보다 문제의 오류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진짜 실력 자가진단이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면서 책을 덮는 생각은 정말 공감돼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류의 불안감을 잘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