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신청 버튼부터 눌렀던 날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국비지원 광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HRD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덜컥 캐드 학원 과정을 신청해버렸다. 사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들 취업할 때 하나쯤은 따두는 자격증이라길래, 나도 뒤처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전부다. 서울기술교육원이나 가까운 사설 학원들을 몇 군데 비교해 봤는데, 어디는 집에서 너무 멀고 어디는 시간대가 안 맞아서 결국 집에서 지하철로 40분쯤 걸리는 곳으로 정했다. 수강료는 국비 지원으로 거의 내 돈이 들지 않거나, 아주 일부만 결제하면 되는 구조였다. 대략 0원에서 10만 원 안팎이었던 것 같은데, 금액보다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석해야 한다는 그 압박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빡빡했던 수업 일정
첫 수업 날,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의 그 공기는 묘했다. 다들 뭔가 열심히 해보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들 피곤에 절어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생각보다 훨씬 체력 소모가 컸다. 캐드 프로그램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보면 나중에는 선이 휘어 보일 정도였다. 강사님은 친절했지만, 진도는 정말 쉴 새 없이 나갔다. 한 번 집중력을 잃고 멍하니 있다 보면, 옆 사람들은 벌써 도면을 절반 넘게 그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느껴지는 자괴감은 생각보다 컸다. 이게 취업을 위한 필수 코스라고는 하는데, 과연 내가 이걸 실무에서 얼마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소통보다는 기능 익히기에 급급했던 시간들
수업 도중에는 장애인 바리스타 양성이나 제대군인 전직 지원 같은 다른 국비 교육 사례들을 언뜻 듣기도 했다. 그런 교육들은 소통과 정성을 강조한다던데, 여기는 오로지 ‘툴’을 얼마나 빠르게 다루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명령어를 치고, 선을 잇고, 레이어를 정리하고.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일단 자격증 시험 날짜는 다가오니 입을 다물고 기계처럼 손을 움직였다. 가끔 옆자리 앉은 사람이 “이거 다음에 뭐 누르죠?”라고 물어볼 때 잠깐 대화하는 게 유일한 소통이었다. 자동화가 가속되는 시대에 인간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 건지, 멍하니 화면 속 별가루처럼 흩어지는 도면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오묘했다.
행정 절차와 서류의 늪
학원 수업 자체보다 더 짜증 났던 건 실업 인정 신청이나 수강 증명서를 떼는 복잡한 행정 과정이었다. HRD 사이트랑 고용센터 시스템을 왔다 갔다 하며 서류를 올리고, 담당자 답변을 기다리고. 한번은 서류가 미비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용센터에 직접 전화를 거는데, 연결이 정말 안 됐다. 공보관이나 안내창구에 문의해도 돌아오는 건 “담당자가 지금 바빠서 그렇다”는 말뿐이었다. 내가 공부하러 온 건지 서류 처리하러 온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시스템이 딱딱하고 불편하게 설계된 건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싶어 답답한 날이 많았다.
끝이 나도 개운하지 않은 기분
결국 과정은 끝났다. 자격증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도, 이게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다 하니까, 국비로 공짜에 가까우니까 시작했지만, 사실 내 적성에 완벽하게 맞는다는 확신은 없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거 나중에 안 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들 취업에 성공해서 어디로든 떠나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 프로그램의 명령어 몇 개만 외우고 남은 게 없는 기분이다. 다음에 또 국비 교육을 신청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 아마도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다른 걸 고민해 볼 것 같다. 오늘은 날씨도 흐린데, 캐드 도면이나 더 그려야 할지, 아니면 그냥 다 접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아직 답을 못 내렸다.

자동화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디자인 작업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