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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내내 붙잡고 있던 자격증 공부가 허무하게 끝났다

일단 시작은 거창하게 서점부터

한 달 전쯤인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격증을 따겠다고 서점에 들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실 당장 이직이 급한 것도 아니고, 업무에 바로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무력감이 들 때마다 공부를 하면 좀 나아질까 싶었던 모양이다. 퇴근길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서 제일 두꺼운 기본서를 집어 들었다. 가격이 4만 5천 원이었나. 요즘 책값 정말 비싸다. 계산대에서 카드를 긁으면서 ‘이걸 다 읽으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겠지’라는 아주 뻔한 다짐을 했다. 사실 서점에서 책을 살 때가 제일 행복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미 자격증을 따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드니까. 문제는 그 착각이 책을 펼치는 순간 아주 빠르게 증발한다는 거다.

퇴근 후 카페에서의 사투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회사 근처 투썸플레이스에 갔다. 집으로 가면 눕게 될 게 뻔하니까 억지로라도 환경을 바꿔야 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고 멍하니 책을 펴는데, 글자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분명히 한국어인데 왜 이렇게 외계어처럼 느껴지는지. 특히 무슨 법 조항이랑 이론들이 섞여 있는 파트는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옆자리 고등학생들은 수능 공부하느라 엄청나게 집중하는데, 나는 스마트폰으로 배터리 관련 뉴스나 보고 있었다. LG엔솔이나 삼성SDI가 요즘 배터리 화재 안전성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기사를 읽으며 ‘나도 내 뇌의 화재 안전성을 먼저 챙겨야 하나’ 같은 쓸데없는 농담이나 생각하고 말이다. 커피 값만 한 달에 10만 원은 넘게 쓴 것 같다. 이게 공부를 한 건지 카페 자릿세를 낸 건지 지금도 헷갈린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때의 그 기분

결국 시험 당일이 왔다. 토요일 아침 9시. 잠실에 있는 한 중학교였나. 고사장에 들어갔는데, 다들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만 약간 부끄러워졌다. 낡은 책상 위에 볼펜 하나 덜렁 올려놓고 시험지를 받았다. 문제를 딱 보는 순간 느꼈다. ‘아, 망했다.’ 내가 열심히 밑줄 그었던 부분은 하나도 안 나오고, 어설프게 훑어보고 넘겼던 구석진 내용들만 잔뜩 보였다. 어떤 건 아예 기억조차 안 났다. 시험 보는 내내 시계 초침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리던지. 옆 사람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다 내 심장이 덜컥거렸다. 시험 시간은 120분이었는데, 한 40분 정도 지나니까 더 이상 머리를 굴리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답안지 마킹이나 제대로 하자 싶어서 손을 움직였다. 옆자리 사람은 나보다 30분 일찍 나가던데, 그 뒷모습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끝난 뒤에 남는 묘한 공허함

시험장을 나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합격하고 나왔으면 이 햇살이 내 승리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을 텐데, 그냥 불합격이 확정된 사람의 뒷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근처 김밥천국에 들어가서 라면 하나를 먹는데, 국물 맛이 하나도 안 느껴졌다. 4만 5천 원짜리 책은 지금 내 방 책장에 그대로 처박혀 있다. 버리자니 아깝고, 다시 펼치자니 지긋지긋하다. 친구들이 물어보면 ‘뭐, 경험 삼아 본 거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사실은 조금 분하다. 그렇다고 당장 다음 회차 시험을 접수할 용기는 없다. 시험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다는데, 확인하는 게 귀찮아서 아마 문자 알림이 올 때까지 그냥 둘 것 같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공부라는 게 거창한 미래를 위한 게 아니라, 그냥 이런저런 쓸데없는 시도를 해보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좀 피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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