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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노트북 앞에 앉는 게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화상 과외를 시작하며 가졌던 아주 얄팍한 기대

직장을 다니면서 영어를 다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충동이었다. 퇴근하면 그냥 넷플릭스나 보면서 멍하니 있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굳이 또 누군가와 화면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게 처음엔 꽤 그럴듯한 자기계발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잠깐 했던 대면 과외는 선생님 집까지 오가는 시간도 낭비였고, 가끔은 너무 늦은 시간에 약속을 잡으면 나도 피곤하고 선생님도 지쳐 보여서 눈치가 보였었다. 그래서 이번엔 마음 편하게 온라인 화상 과외를 택했다. 장소 이동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다. 그냥 퇴근해서 옷 갈아입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되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집이라는 공간은 원래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곳이라 그런지, 막상 카메라를 켜고 원어민이나 과외 선생님을 마주하면 뇌가 정지하는 기분이 든다.

2:1 수업인가 1:1 수업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지인 한 명이 자기도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며 같이 2:1 과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가격 부담도 덜고, 둘이서 하면 조금 덜 어색할 것 같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한 달에 대략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면 되는 곳을 찾아보았는데, 막상 2:1로 진행하려니 시간이 맞질 않았다. 결국 그 친구는 학원을 등록하고 나는 그냥 1:1 온라인 과외를 이어가기로 했다. 사실 1:1이 집중도는 훨씬 높다. 선생님의 시선이 온전히 나한테만 꽂혀 있으니까. 그런데 그 시선이 때로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딴짓을 할 틈도 없다. 가끔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거나 화면이 끊기면 그 핑계로 몇 초간 숨을 고르곤 하는데, 요즘은 그런 잔기술도 다 들키는 기분이다.

진도 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앉아있는 일

중등 수학 인강이나 역사 특강 같은 걸 보면 다들 족집게 강사니 뭐니 하면서 진도를 착착 나가는 것 같은데, 직장인 영어는 진도라는 게 딱히 없다. 그냥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 입을 보며 선생님이 한숨을 참는 게 느껴질 때마다 민망하다. 가끔은 ‘이 돈 내고 내가 왜 여기서 고통받고 있지’ 싶다가도, 그래도 노트북 덮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든다. 어제는 수업 시간 40분 중에 15분을 그냥 잡담으로 보냈다. 선생님이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길래 넋두리를 늘어놓았는데, 그게 영어로 말하려니 너무 어려워서 결국 한국어를 섞어 쓰게 되더라. 이게 과외인지 심리 상담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하는 공부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수업 직전의 유혹이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따뜻한 밥 먹고 잠깐 소파에 누우면, ‘오늘 수업 취소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10분만 더 누워있다가 컴퓨터를 켜도 충분한데, 그 10분의 무게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차라리 정해진 시간에 학원이라는 장소에 가는 게 마음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는 가면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하니까. 집은 나를 계속해서 쉬고 싶게 만든다. 거실에 널브러진 빨래나 쌓인 설거지가 눈에 밟히면 수업 내용이 하나도 안 들어온다. 결국 수업 5분 전에 급하게 청소기를 돌리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영어에 대한 갈증

벌써 세 달째 꾸준히 하고는 있다. 영어가 드라마틱하게 늘었느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외국인과 마주 앉아도 여전히 머릿속은 하얘지고, 더듬거리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예전보다 ‘덜 부끄러워졌다는 점’ 하나는 확실하다. 처음엔 선생님이 질문하면 어떻게든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려고 10초씩 침묵했는데, 요즘은 일단 아무 단어나 내뱉고 본다. 어차피 얼굴도 안 보고(사실 화면으로 보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이니까 틀려도 그만이라는 무식한 용기가 생겼다. 다음 달에도 이 과외를 연장할지는 미지수다. 다음 주쯤 또 회사 일이 바빠지면 분명 고민하게 되겠지. 그래도 일단 결제는 해뒀으니 며칠은 더 버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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