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는 것까지가 제일 어렵다
회사 다니면서 자격증 하나쯤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말, 요즘 들어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이대로 연차만 쌓여가는 게 맞는 건가 싶은 불안함이 컸던 것 같다. 퇴근하면 그냥 멍하니 유튜브나 보다가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는데,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큐넷에서 기웃거리다가 일단 공인중개사 1차 과목부터 살펴봤다. 민법이랑 학개론, 두 과목만 하면 된다고 해서 만만하게 봤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든 생각은 ‘이걸 내가 정말 외울 수 있을까’였다. 학원비는 대략 60~80만 원 선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일단 결제부터 해놓고 안 하면 나 자신을 너무 원망할 것 같아서 무작정 수강신청을 눌러버렸다.
20대 후반,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엔 조금 늦은 걸까
옆자리 동료가 갑자기 사회복지사 1급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야 겨우 내 앞가림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벌써 미래를 위해 자격증을 따고 있다니. VMD 쪽 취업 준비하는 후배는 컬러리스트나 실내건축 자격증이 필수라며 주말마다 학원을 다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내 적성을 찾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자격증 소유’라는 안도감을 얻으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거란 걸 이미 알고는 있다. 그런데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모바일 자격증 확인 화면을 보거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서류 한 장 더 챙겨두는 게 왜 이렇게 마음 편한 건지 모르겠다.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보낸 무의미한 시간들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스터디카페를 한 달 정도 끊어봤다. 4주 이용권에 15만 원 정도 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일주일에 3번은 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가면 책상에 앉아서 스마트폰 보느라 30분을 보내고, 커피 한 잔 타 마시면서 멍 때리다 보면 금방 2시간이 지나가 있다. 옆에 앉은 고등학생들은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하던데, 나는 그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 행위 자체에 취해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밑을 걸으면서, 오늘 뭘 했는지 되짚어보면 막상 기억나는 건 강의 영상의 도입부뿐이다.
국가기술자격증 종류를 뒤져보며 느낀 피로감
가끔은 큐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국가기술자격증 종류를 훑어보곤 한다. 기능사부터 기사까지, 정말 세상에 직업이 이렇게나 많나 싶다. 반려동물장례지도사 같은 생소한 자격증을 보면 ‘이걸 따면 뭐가 달라질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다가도, 금세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자’라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한다는 건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단순히 자격증이라는 종이 한 장을 따는 게 아니라, 내 퇴근 후의 온전한 자유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사실 가장 큰 진입장벽인 것 같다.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쉬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싶다가도,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게 또 그렇게 불안하다.
결국 무언가 하나는 끝내야 한다는 압박
작년인가, 어떤 기사에서 청년 자격증 지원금이 필요하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그렇지, 돈도 많이 드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교재 사고 강의 결제하고 나니 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는지 너무 이해가 간다. 시험 한 번 치는 데 드는 응시료도 사실 20대 월급쟁이한테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이번에는 그래도 끝까지 한번 가보려고 한다. 민법 조항들을 외우다 보면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은 책을 덮지 않는 게 목표다. 다 따고 나면 정말 뭐라도 달라질까, 아니면 그냥 또 다른 불안함이 찾아올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오늘 계획한 강의 2개는 듣고 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