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노후 준비
작년 가을쯤이었나,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회사에서 슬슬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까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친구 몇 명은 벌써 공인중개사니 뭐니 하면서 자격증 하나씩은 들고 있더라. 나도 뭔가 손에 쥐어야 할 것 같아서 덜컥 전기기사 책부터 샀다. 서점에 가서 제일 두꺼운 책을 골랐는데, 솔직히 그땐 그게 내 노후를 책임져 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근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든 생각은 ‘아, 이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였다. 회로이론이라는 단어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렸으니까. 가격은 대충 4만 원대였나, 5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일단 샀으니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집 근처 직업전문학교 상담을 가봤는데
혼자 하려니까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서 집 근처에 있는 현대직업전문학교 비슷한 곳을 기웃거렸다. 대전 지역 쪽에 국비 지원되는 곳이 많다고 해서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5060 세대가 정말 많더라. 다들 눈빛이 나보다 훨씬 진지했다. 안내해주시는 분이 내일배움카드 있으면 수강료가 많이 깎인다고는 하는데, 그 과정에 들어가려면 시간 투자를 꽤 해야 했다. 주말도 반납해야 하고 퇴근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 체력이 될까 싶어서 결국 등록은 안 했다. 그냥 혼자 책이나 보자 싶었는데, 그게 또 패착이었다. 의지력이란 게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더라.
전기기사 CBT랑 기출문제 사이에서 방황
그래도 포기는 안 하고 싶어서 휴대폰으로 CBT 기출문제 앱을 깔았다. 버스 타고 출퇴근할 때마다 틈틈이 풀면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켜면 유튜브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사실 정보통신기사니 뭐니 자격증 종류는 참 많은데, 막상 따놓고 어디다 써먹을지는 다들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도 그냥 남들 다 따니까 불안해서 시작한 게 컸지, 진짜 이게 내 적성에 맞는지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밤새워서 공부하다가 다음 날 회사 가서 졸고, 또 어떤 날은 아예 책을 펼치지도 않고. 이러다 보니 자격증 취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냥 ‘나는 뭔가 하고 있다’라는 자기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짓 같기도 했다.
독학사나 학점은행제 쪽으로 눈을 돌려볼까
전기 쪽이 어렵게 느껴지니까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다른 길을 찾게 된다. 독학사 3단계 같은 거로 학위 따는 게 빠르다는 소리도 들리고, 학점은행제 상담도 여기저기 찔러봤다. 근데 그것도 해가 넘어가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김이 확 샜다. 벌써 나이가 몇인데, 지금 시작해서 언제 경력을 쌓아서 노후를 대비한다는 건지. 가끔 뉴스 보면 토익 같은 거 필요 없다고 AI가 어쩌고 하는데, 그런 거 보고 있으면 더 막막하다. 자격증 딴다고 진짜 인생이 바뀌는 건가, 아니면 그냥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건가 싶고.
아직도 책상 위에는 쌓여있는 공부 자료들
결국 전기기사 책은 책장 구석으로 밀려났다. 대신 요즘엔 원예복지사나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이것도 결국 제대로 파고들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조급하게 마음을 먹었던 게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는 매수신청대리 이런 걸 해두면 좋다는데, 나는 법 쪽은 또 질색이라. 뭐 하나 정해서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어제는 다시 마음잡고 예전 기출문제 앱을 켰는데, 한 문제 풀고 나니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드러누워 버렸다. 내 노후 대비는 이렇게 또 미뤄지고 있다. 내일은 좀 다를까 싶지만, 아마 내일도 똑같겠지.
